Lifelog-수동

40년 경력 수의사 할아버지와의 기분 좋은 만남

iPhoneArt 2009. 2. 5. 16:23
300x250
할아버니 의사 선생님

동거견에게 안보이던 증상이 생겼습니다.그동안 다니던 병원들을 뒤로 하고, 새로운 병원을 찾아갔습니다. 지나 다닐 때마다 봐왔던 병원이고, 평판도 괜찮아서 꼭 가보고 싶었던 병원입니다. 
병원에 가던날..산책간다고 신이나서 흥분하는 동거견. 매일 산책하는데, 매번 뭐가 그렇게 좋은지. 귀는 접히고, 좋다고 궁뎅이 씰룩~발도 동동 구르고. 개들의 사랑스런 솔직함이란.


병원앞에 도착했는데, 왠 할아버지가 밝은 표정으로 보더콜리와 흡사한 작은 개를 데리고 병원에서 나옵니다. 반가워하는 두마리 개때문에 서로 리드줄을 당기는데, 할아버지가 웃으시면서 " 왜 왔어?"
"얘도 병원에 가려구요" 그리고 병원문을 열었는데, 아무도 없네요. '응? 혹시 저 분이 의사선생님?'
"저, 선생님 계세요?" 순간 문이 열리면서, 그 할아버지가 마구 나대는 점박이를 끌고 들어 오시네요.

여러 증상을 얘기하는 중, 귀 먼저 보십니다. 양쪽 귀를 다 닦아 주시면서,
"귀는 여름에 아마 또 도질수도 있는거고..". 우오오~
"귀가 쳐진 놈이라 한번 귀병이 나면 세균들이 그안에 서식해서.."엉엉..
"자~~이제 고추 좀 보자~~" 병원가서 고추 보여주는게 처음인 제 동겨견. 꼼짝도 안합니다.
"요도에 염증이 있어, 그래서 좋아졌다가 오줌을 누면 또 상처가 나고.." 으..우울합니다. 정말. 알약을 갈면서 약을 조제하실 동안 병원을 둘러보니, 요즘 병원과 많이 달라보였어요.
오랜 세월을 버틴 흔적이 역력한 내부, 여러 부분 직접 손댔을것 같은 인테리어.

조제실쪽에 서있는 수의사 할아버지 모습이 역광과 함께 마치 그림처럼 보입니다. 왠지모를 따뜻함..
"40년 전엔 오히려 큰개가 많았어. 도베르만, 복서..지금은 작은 애완견이 많지만"
"그때 벌써 도베르만이 들어왔나요? 우리나라에 빨리 들어왔네요" "응, 그땐 사냥을 많이 했거든"

40년!! 어쩐지 큰개도 서슴없이 만지시더라. 새내기 의사들은 "이 개 물어요?"이러거나 필요한 순간만 보조가 와서 잡고 개와 거리를 두거나, 귀를 만질때까지 정말 조심하던데. 하긴 아픈데 건드리면 개가 본능적으로 반응하니까 조심해야 한다.

"자~이제 주사 맞아야지~아유, 순한놈. 이놈들은 너무 순해" 주사를 두대 놔주시고, "기다려, 내가 약 한봉 먹여줄께" 

작은 티스푼에 약을 가져와  웃으면서 "설탕을 약간 섞어서, 약이 쓰니까.."여기 주둥이에 쓰윽~"
아, 가루약 먹이는데 이런 방법이 있었다니! 늘어진 입술 안쪽이 잔뜩 묻은 가루약을 낼름 빨아먹더군요."짜식, 3살 넘어서 그런지 의젓하네."
"어떤지 전화해."  "아, 그럼 명함 주세요. 명함을 안챙겼네요"
"아~거기 약봉투에 전화번호 써있어, 그걸로 해" "네"
돌아오는 길, 기분이 좋았습니다. 개를 다루는게 너무 능숙하시고, 40년 수의사 생활. 그경험을 보고 믿음도 갔습니다. 
병원에 가서 ' 괜히 이병원 왔어..' 하게 되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에.

다음날 약을 먹이려고 약 봉투을 열었습니다. '헉'하고 깜짝 놀랐습니다.
사각형이 아닌 오각형!
봉투가 아니고 직접 다 접으셨네요.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뭔가를 하고 계실때 이렇게 만드셨나봐요.
너무나 깨끗하게 각 잡힌 봉투가 착착 겹쳐져서 한손에 들수 있었어요. 놀란 마음 다잡고 기념 촬영.
약봉투의 간지란 이런걸 말하는 걸까요. 40년의 경험과 포스가 느껴집니다.

 수의사 해리엇의 마음이 따뜻해지는 개이야기(James Herriot's Dog Stories.1986) 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이책에서 느꼈던 따뜻한 감동을 이 수의사 할아버지한테서도 느끼고 왔습니다.
개가 가진 병을 상대하는게 아니라, 나를 찾아온 개를 있는 그대로 맞아주시던 모습.
기분 좋은 경험이었어요. 동겨견도 좋아라~하는 눈치.
"할아버지~ 40년 경험담,  책한권 쓰세요! 한국에 40년 경력의 수의사가 몇분이나 되겠어요."
300x250